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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New Life/Austrailia Working

번디 일상 주워담기 - 백패커스 이야기 -

by 달려라폴폴 2018.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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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 2014. 5. 13


워홀 다녀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2년 사이에 나도 워홀 이전에 현실에 치열하게 살고 있는 1인으로 되돌아 온 기분이다. 
그렇다구 해서 여행에 대한 열망이 식거나 하지는 않았다. 
재미난 여행을 위해 지금은 잠시 쭈구리가 되어 있을 뿐이지 ㅜㅜ

짧은 워홀 기간 동안 내가 가장 오래 머울렀던 번다버그의 생활에 대해서 적어 보려고 한다.

 

첫번째는 Backpackers.

우리나라에도 많은 게스트 하우스의 개념이지만 국내와 해외의 가장 큰 차이점은 mix room 이 있다는 게 아닐까? 
물론 한국에서도 난 강제로? 만들어진 믹스룸에서 지내 보긴 했지만


내가 머물렀던 백패커는 모든 방이 믹스룸으로 이루어져있다. 
오히려 남자만 있는 방, 여자만 있는 방이 있는 게 이상할 정도? 였고 여탕이거나 남탕인 방에는 얘들이 다른 방으로 이사를 가거나 다른 방에서 놀다가 잘 때만 자기 방으로 건너간다.

뭐 믹스룸이라고 해서 야릇한 상상은 실제와 다르다ㅎㅎ
그냥 모든 친구들이 말 그대로 친구일 뿐이다
.
 
물론 썸을 탄다면 이야기를 달라지겠지만 옆 침대에 있는 얘가 남자라고 침대 2층에서 자는 여자애가 있다고 해서 내가 뭔가 꺼리끼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유럽에서 온 남자 얘들은 쉽게 훌렁훌렁 벗고 다니고 여자애들도 옷 갈아 입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속옷은 예외!! 오히려 동양 쪽 일본 친구들이 좀 수줍어 했던 기억이 든다.


이곳의 백패커는 여행객 보다는 일을 하기 위해 온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곳에 머물고 발급받은 FTN을 알려주면 job을 컨택해서 일 할 수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숙소 겸 일자리알선을 동시에 한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농장들 마다 거리가 있다보니 컨택해준 농장으로 픽업도 해준다. 


매우 좋은 시스템이긴 하지만 단점도 있다.


일단 초반에는 농장이 Fixed 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정성이 있다.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신경 쓰지 않겠지만 여기로 오는 대부분이 돈이 없다!!! ㅜㅜ 

그러니까 여기로 왔지. 


그래서 매일 저녁 중앙게시판에 working list가 나오는 시간이면 여기저기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일 잘 못하는 애들은 처음 몇일 일을 나갔다가 다시 짤리고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다행히 초반에 일자리도 빨리 얻었고 

거의 고정처럼 일을 꾸준히 해서 3달 정도 만에 여행자금을 마련 했다.


그리고 이곳의 하루 숙박은 생각보다 비싸다. 

물론 일자리 알선의 측면에서는 정말 좋긴 하지만 그만큼의 지불은 어쩔 수 없는것 같다. 

픽업비용을 하루에 7$ 정도로 계산 했던 거 같은데 이것까지 포함해서 220$이상 정도 냈던 거 같다. 

주급제니까 대부분 돈은 주마다 한번씩 방값을 계산하는데 

200$이상이면 우리나라에서 거의 30만원가까이 되는 돈을 일주일 마다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나는 주에 500~700$ 정도 벌어서 돈을 그나마 save 했는데 

다른 애들은 겨우 일주일에 100$ 모으기도 힘들어 했다.

 


우울한 이야기만 해서 좀 그랬나?? 

그런데 정말로 내가 백패커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곳의 분위기!!!

개인적으로 호주 워홀에서 다행인 점은 쉐어하우스 이용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이 대부분인 쉐어 하우스에 있었으면 

내가 4개월간의 호주생활의 경험이 더욱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곳의 백패커는 유럽애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대부분 쉐어하우스는 한국에서 온 아이들 위주로 꾸려 지다 보니 

식사나 생활에서는 불편함이 없지만 외국아이들과 다양한 문화교류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내가 회사까지 그만둬 가며 워킹을 왔던 이유는 

뭔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문화의 차이들을 느끼고 싶어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백패커 생활이 나에게는 좀더 다양한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된다.


일이 끝나고 숙소에 도착하면 보통 3,4시 정도가 되고 샤워를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가 머물렀던 이곳은 숙소가 성곽처럼 주위에 룸들이 둘러쌓여 있고 

중앙에 큰 테이블들이 있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곳에 모여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일이 끝나고 나면 중앙의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식사도 그곳에 모여서 주로 하다 보니 같은 방 룸메가 아니더라도 

쉽게 몇 번 마주 치면 친해 질 수 있는 구조였던 것 같다.


백패커 마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다르긴 한데 이곳은 90여명 정도가 머물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고 

각자의 언어들도 사용하지만 공용어인 영어도 자연스레 사용하는 환경이었다. 


영어라면 겨우 Hi만 사용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곳에서 친구들이랑 손짓 발짓 섞어가면 이야기도 많이 했고 주말이 되면 근처 운동장으로 나가서 축구 시합도 함께 했다.

 


이곳의 백패커 에는 몇 가지 룰이 있었다. 

첫번째는 주류반입 금지였고 그리고 외부인을 데리고 와서 숙박을 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쉐어하우스에서는 같이 음식을 만들고 술을 먹은 경우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보통은 클럽에가서 술을 마시거나 근처 공원에 가서 BBQ를 하며 술을 마시곤 했었다. 


물론 아예 안마신 것은 아니지만 마시더라도 마치 물이나 음료수인척 컵에 따라 마시거나 혹은 밤에 문을 잠그고 우리끼리 음악을 크게 틀고 노는척 하면서 마시는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 규정상 술 자체를 백패커 안에 가져오면 kick out 당했기 때문에 항상 주의 했어야 했다. 

그리고 가끔 주인을 알 수 없는 술이 나오면 청소해주는 아주머니께서 시원하게 쓰레기통에 넣어 주셨다 ㅜㅜ 


그리고 외부인은 보통 8,9시이후에는 나가야 했다. 

즉 자고 가면 이 역시 kick out 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간혹 누군가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가 있고

그러한 이유들로 외부인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이곳에서는 매우 꺼려 했다. 


그리고 이곳에 지내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 하는 경우 일을 그만 두는데 

그 이후부터는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 방에서 몰래 지내는 경우도 있다 보니 

백패커에서는 돈을 벌어야 되니까 지속적으로 감시를 했다.



그리고 이곳의 관리자가 독일인이라 독일인 말고 다른 사람들은 되게 차별?했던 점이 또 하나의 단점이었다. 

내가 있었던 방은 4인실이라 사람은 적지만 방안에 샤워장이나 주방이 없어 항상 공용샤워장이랑 주방을 사용했는데 

이게 아침 저녁마다 전쟁이었다. 


그래서 나도 맨날 남의 방에 놀러 가서 씻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시간이 흘러 관리자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했더니 말만 알았다고 하고 결국에는 바꿔주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은 많이 무시를 당했기 때문에 나중에 나도 그 관리자가 있을때는 서로서로 쌩 갔었다. 

굳이 그 녀석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호주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마치고 Agnes beach를 가기 위해 다시 찾았었는데 

그 때는 몰래 잘 수가 없어서 그곳에서 만난 여동생 차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브리즈번으로 이동했었다. 

다행히 점심때 프랑스친구네 방에서 2,3시간 정도 낮잠을 자서 피곤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워홀러들은 너무 불쌍하다 ㅜㅜ



그래도 이 모든 고생을 상쇄하고도 이곳은 나에겐 너무 소중한 추억이 있었던 곳이었다. 

처음 호주에 발을 딛고 생활을 시작했던 곳도 이곳이었고 

여행을 마친 뒤 잠시 2일정도 있었던 곳에서도 마지막을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마치 호주에서의 고향?느낌이 물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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